
길은 미래를 향해 뻗어있지만 그 길을 만든 건 추억이었다. 길은 속도를 위해 존재해 왔다. 하지만 추억의 몸인 그 길은 자꾸 속도의 바깥으로 나를 끄집어내곤 했다. 실연의 신발은 속도를 갈망했고 사랑의 신발은 정지를 찬양했다. 바뀐 사랑을 이끌고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새로운 추억은 그보다 오래된 추억을 지웠고 가까운 미래는 더 먼 미래를 지웠다. 하여 미래와 추억은 어느 순간 길 위에서 만났다. 난 이미 낡아버린 신발로 미래를 추억하였다. 길이 끝나는 곳에서 그 길은 내 암흑의 내부를 걷기 시작했고 비 내리는 내 기억들의 필름이 몸을 풀어 길의 미래가 되어주었다. - 유하 -
사진이 있는 이야기
2007. 11. 29. 08:57

길을 따라 가다보면 길은 부끄럼타는 색시같이 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속내를 보인다. 길섶에 수더분히 놓인 생명 하나와도 인연을 맺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것을 보여 준다.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길은 그냥 길일 뿐이다. 순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 가자. 터벅터벅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그러다 주저 앉기도 하면서 나의 모든 것을 길에 맡기면 마침내 길은 제 마음을 열어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준다. 애써 알려고도 하지 말고 그렇다고 모른체 하지도 말자. 그냥 느끼는 대로, 보여지는 대로 가다보면 길은 큰 팔 벌려 나를 감싼다. 어차피 우리는 모두 나그네가 아니던가. 맺어지는 인연, 스쳐가는 인연 모두 소중한 것을. - 운길산 수종사에서 옮겨온 글 -
사진이 있는 이야기
2007. 3. 20. 10:4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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